나의 이야기 69

울 아버지 이야기

울 아버지(蘇岩 金泳 俌 아우구스티노)께서는 順川 金氏 절재("김종서"의 호)公 派의 후손으로 1900년 1월 28일(음력)에 부산에서 5남 3녀 중 3남으로 태어나셨다. 집안에서 내려오는 말에 의하면 1455년 "수양대군의 난"으로 김종서 장군과 그 다섯 아들들, 손자들이 죽임을 당할 때에, 절재공의 둘째 아들 "승벽"의 장남인 "중남"이 피신하여 기적적으로 목숨을 건지고, 개성에서 피신 생활을 하며 일가를 이루어, 이후 일명 순천 김 씨 "개성파"로 불리면서 19세기까지 세거해 오다가, 우리 할아버지께서 부산으로 옮겨 오신 후에 아버지를 출생하셨단다. 태어 나신지 얼마 후 아버지께서는 개성 숙부님 댁으로 양자로 보내져서 다시 조상들이 대대로 살던 개성으로 돌아가 그곳에서 성장하셨단다. 1911년 6월..

나의 이야기 2019.08.09

2018년과 칠순

2018년은 1949년 소띠생인 나의 칠순! 몇 차례나 울겨먹은(?ㅋㅋ) 칠순 축하식을 한자리에 모아 보았다. 회갑은 2009/07/07에 그 당시 사위가 미국 예일대학교에 2년동안 교환교수로 근무했기에, 2009/06/07(주일)에 큰딸과 함께 미국으로 가서 Connecticut주 남부에 있는 작은 도시인 New Heaven의 Hamden에 있는 작은 딸네집(Aspen Glen APT)에서 보냈다. 1. 2018/05/11(금) 청도군 매전면 수무리에 있는 친구가 베풀어 준 "Lily39 칠순 맞이 어울림 한마당" (40명 가까이 참석) 내가 사회를 보았고.... 2. 2018/06/09(토) 몇해전 설(舌)암으로 아직도 식사를 제대로 못 하시는 범물성당 로사 형님께서 베풀어 주시는 식사 대접에 언니,..

나의 이야기 2019.01.01

사진으로 보는 가톨릭 신자로서의 나의 일생(3) ; 2018년 9월 ~ 2019년10월

2018년 9월11일(화)~12일(수) 일년 가까이 준비해 온 대구 "로사리오회"의 행사로 17명의 회원들과 함께 "평창 성필립보 생태마을" 1박2일 피정을 2011년 10월과 2017년 5월에 이어 세번째로 다녀 왔다, 1박2일 피정을 마친 후, 젊고 너무 잘 생기신 "유경선(첼레스티노)" 생태마을 부관장 신부님과 함께 기념 촬영! 강원도에 간 김에 조각 예술품으로 아름답게 꾸며 졌다고 소문 난 평창 "대화 성당"과 강원도에서 가장 먼저 설립되었고, 한국인 신부가 처음으로 만들었다는 횡성 "풍수원 성당"을 둘러 보았다. 9월12일(수) - 평창 "대화성당" 횡성 "풍수원 성당" 2018년 9월29일(토) "성모당 봉헌 100주년 기념 교구 도보 성지 순례"에 참가했다. "비산(날뫼)성당"에서 출발! "..

나의 이야기 2018.09.30

사진으로 보는 가톨릭 신자로서의 나의 일생(2) ; 2008년 4월 ~ 2018년6월

2008년 4월14일~25일 11박12일 동안 "성모 발현지(파티마, 루르드, 바늬) 성지순례"를 다녀 왔다. 포르투깔 파티마 근처의 "산타 마리아 대성당" 파티마는1917년 5월13일부터 10월13일 까지 매월 13일에 여섯번을 계속하여 당시 9살, 7살, 6살의 가난한 세 목동들에게 나타나신 곳. 성모님의 발현을 본 세 목동 "루시아, 히야친다, 프란치스코"의 동상이 뒷 쪽에 있었다. "루시아, 히야친다, 프란치스코"의 무덤 파티마에서 촛불 행렬 성녀 "아빌라의 데레사"의 고향인 스페인 아빌라와 부르고스에서 서울 "서강대학교"와 광주 "가톨릭대학"을 설립한 "예수회"의 창시자인 스페인 로욜라 "성 이냐시오" 생가에서 "루르드"는 피레네 산맥 기슭 해발 423m에 위치한 작은 도시로써 1858년 2월1..

나의 이야기 2018.08.18

사진으로 보는 가톨릭 신자로서의 나의 일생(1) ; 1949년 7월 ~ 2006년 4월

1949년 7월 9일 나는 아버지 金 泳俌(아우구스티노)님과 어머니 韓 萬千(바올라)님 사이에서 태어 났다. 태어나자마자 울 엄마의 젖에 병이 생겨서 엄마 젖은 한 번도 물어보지도 못한 채, 6.25 사변 전이라 우유는 구할 수 없어서 쌀미음으로 살다 보니, 면역성이 떨어진 탓인지 병에 걸려 첫돌이 지난 후에도 병아리 다리로 누워서만 지냈으며, 보는 사람마다 혀를 끌끌 차며 살기 힘들다고 했단다, 우리 집보다 먼저 신앙생활을 하셨던 숙모님께서 오셔서 보시고는 죽기 전에 견진 성사를 받아야만 구원받을 수 있다고 나를 안고(그 당시 남산동 유스티노 신학교 건너편에서 살았기에...) 교구청으로 데려가셔서 서정길(?) 대주교님께 견진 성사를 받게 했단다. 교구청 교적 원본에는 1950년 10월 12일(1950년..

나의 이야기 2018.08.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