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가 문자 기록으로 번역을 시작한 이래 지금껏 가장 많은 언어로 번역된 책이 그리스도교의 신구약 성경임은 잘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도대체 이 성경이 현재까지 몇 개 언어로 번역되었나 하는 질문에 정확히 대답하기는 어렵습니다. 그 이유는 성경의 번역량이 엄청나게 많고 또 끊임없이 번역이 계속되고 있어, 그 자료를 한눈에 들어올 수 있도록 모으는 일이 쉽지 않은 까닭도 있지만, 그보다 이 질문에 대한 정확한 대답을 내기 어려운 이론적인 난점이 있기 때문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해를 돕기 위해 한국어에 국한하여 생각해 보기로 합니다. 우리 민족이 사용하는 한국어는 한 종류뿐이라고 흔히 생각하므로, 각 언어로 번역된 성경의 수를 집계할 때 한국어 성경은 1개라고 말할 것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습니다.
1906년 서울의 대영성서공회(大英聖書公會)에서 발행한 <신약전서 국한문>의
요한복음 1장 1절은 “太初(태초)에道(도)가有(유)하니道(도)가上帝(상제)와同在(동재)하매道(도)는卽(즉)上帝(상제)시라”로 되어 있는데,
이 성경의 언어를 “한처음, 천지가 창조되기 전부터 말씀이 계셨다. 말씀은 하느님과 함께 계셨고 하느님과 똑같은 분이셨다”라는 <공동번역 성서>의 언어와 동일한 언어라고 할 수 있을까요?
1906년 판의 국한문(國漢文) 성경의 언어는 중국어도 한문도 아니고,
현재 우리의 시각으로 볼 때 한국어라고도 할 수 없습니다. 또 애써 배우지 않으면 알 수 없는 언어는 방언이라고 하지 않기 때문에 이 언어는 한국어 방언도 아닙니다.
이것은 한국과 중국의 오랜 접촉의 결과로 생겨난 별개의 혼합 언어로 볼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또 1883년에 나온 낱권 성경 <요안ᄂᆡ복음>의 “처음에도가이스되도가 하나님과 함긔하니도난곳 하나님이라”(요한 1,1)와
<제주방언 성경>의 “제ᄌᆞ들은 막끝댕이어 것ᄇᆞ름을 만난 배를 젓이노랜 몹시 애를 쓰고 이섰쑤다. 이걸 보신 예수께서는 물 우리 걸언 제ᄌᆞ들 쪽으로 오시단 그 사람들 ᄌᆞᆨᄀᆞᇀ을 지나쳐 가시젠 ᄒᆞ셨쑤다. 그것은 새백 늬시쯤이랐쑤다”(마르 6,48)를 동일한 언어로 볼 것인가요, 별개의 언어로 볼 것인가요? 이것은 시대적ㆍ지역적인 위상(位相)의 다름에서 기인한 것이니까 동일 한국어의 방언일 뿐이라고 주장한다면, 여기서 바로 언어학자들의 고민 중 하나인 언어와 방언의 구별 문제에 부딪치게 되는 것입니다.
위의 성경이 한 언어의 방언일 뿐이라고 한다면,
누구의 눈으로 보더라도 아주 비슷한, 다음의 독일어ㆍ북부 독일어ㆍ네덜란드어ㆍ아프리카안어(남아프리카 공화국의 공용어)는 어떻게 보아야 할 것인가요?
(다음은 각각 요한복음 3장 16절입니다). 독일어 : Also hat Gott die Welt geliebet, 북부 독일어 : Denn so leiw hett Gott dei Welt hatt, 네덜란드어 : Want alzo lief heeft God de wereld gehad, 아프리카안어 : Want so lief het God die wêreld gehad, 독일어 : dass er seinen eingeborenen Sohn gab, 북부 독일어 : dat hei sinen enzigesten Sähn hengewen hett, 네덜란드어 : dat Hij zijn eniggeboren Zoon gegeven heeft, 아프리카안어 : dat Hy sy eniggebore Seun gegee het, 독일어 : auf dass alle, die an ihn glauben, 북부 독일어 : dormit dat kein ein, dei an em glöwen deit, 네덜란드어 : opdat een ieder, die in Hem gelooft, 아프리카안어 : sodat elkeen wat in Hom glo, 독일어 : nicht verloren werden, 북부 독일어 : verluren gahn süll, 네덜란드어 : niet verloren ga, 아프리카안어 : nie verlore mag gaan nie, 독일어 : sondern das ewige Leben haben. 북부 독일어 : äwerst dat jederein ewigs Lewen hebben süll. 네덜란드어 : maar eeuwige leven hebbe. 아프리카안어 : maar die ewige lewe kan hê. 이들 네 언어는 배우지 않고도 서로 이해할 만큼 가까우므로 한 언어의 방언들로 보아야겠으나, 언어학자들은 북부 독일어 외에는 이들을 별개의 독립된 언어라고 부릅니다.
그렇다면 국가를 염두에 두어, 국가가 다르면 별개의 언어, 동일 국가 내의 비슷한 언어라면 방언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그러나 미국과 영국의 영어라든가, 150개 이상의 (방언이 아닌) 언어가 사용되고 있는 인도의 경우를 생각해 보면 꼭 그런 것만도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어쨌든 온 세계에 존재하는 언어와 방언의 수를 헤아리기 어려운 것처럼,
번역된 성경 언어의 수도 세어보기가 쉽지 않습니다.
이 점은 성경이 그토록 많은 언어와, 특히 방언으로 번역되었고, 또 지금도 번역되고 있기 때문에 그렇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