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의 번역과 수집(오빠金東昭님 著)

각국어 성경으로 보는 세계의 언어와 문자(5) - 하와이어 성경

김혜란골롬바 2024. 8. 3. 15:30

[하와이어 성경]
   태평양 지도를 펼쳐 놓고 보면 하와이를 경계로 남쪽에는 상당히 많은 섬들이 있는데,
그 북쪽은 이상하게도 섬들이 별로 없습니다.
북태평양의 섬들은 시베리아의 캄차카 반도의 꼬리에 붙은 쿠릴 열도(Kuril islands)나, 알래스카 반도의 꼬리에 잇대 있는 알류샨 열도(Aleutian islands)가 그 전부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 쿠릴 열도와 알류샨 열도에는 1,000명 미만의 알류트인(Aleutian)들과 러시아인, 미국인들이 살고 있고,
1840년에 알류트어로 성경이 번역되었다는 기록이 있으나,
저는 이 성경을 갖고 있지 않고 본 일도 없으며, 어디에 이 언어의 성경이 있다는 말도 듣지 못했습니다.
혹시 언제라도 이 알류트어 성경을 구하게 되면 그때에 소개해 드리기로 하고,

오늘은 하와이어 성경에 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하와이 제도는 잘 아시는 대로 태평양의 거의 중앙부에 위치한 8개의 큰 섬과 100여 개의 작은 섬으로 이루어져 그 총면적은 28,337㎢이고,

현재 상주 인구는 143만 명 정도라고 합니다. (2017년 통계).
원래 무인도였던 하와이 제도에 사람들이 들어온 것은 5세기쯤으로, 남쪽으로부터 폴리네시아 계통의 주민이 옮겨 와 현대 하와이인의 조상이 되었다고 합니다.
제임스 쿡(James Cook, 1728 - 1779) 선장이 1778년 하와이 제도의 카우아이(Kauai) 섬과 니이하우(Ni'ihau) 섬 (위 지도의 왼쪽 윗부분)에 도착했을 때,
하와이어는 하와이 제도 전 지역에서 30만 명 정도가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19세기를 지나면서 하와이어는 차차 영어의 침식을 받아 왔고, 1900년 하와이가 미국에 합병되면서 급속히 소멸의 길로 접어들게 되었습니다.

현재 하와이어를 모국어(native tongue, 태어나 어머니로부터 배워서 사용하는 말)로 쓰고 있는 사람은 약 500명 정도이며, 그들은 모두 니이하우섬 주민이거나 그 섬 출신자들이라고 합니다.

모국어는 영어이지만 하와이어로도 자유롭게 의사소통을 할 수 있는 하와이 사람은 2천 명 정도가 된다고 합니다.
평소에는 사용하지 않으나 하와이어를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8,000명 정도 된다는 1993년의 언어학적 통계도 있습니다.

하와이어는 모음이 a, e, i, o, u의 5개이고, 자음이 p, k, ’[ʔ]

이 자음은 전문가들이 흔히 후두 폐쇄음, 또는 후두 파열음이라고 부르는 소리로,
아이누어 표기의 [x]와 같고, 훈민정음 문자의 ‘ㆆ’이 나타내는 소리와 비슷합니다.
어떤 학자들은 하와이어에서 이 자음 [ʔ]도 인정하지 않는데, 사실 이 자음은 그대로 탈락하는 일이 많습니다.
w를 모음 u로 보는 학자도 있는데, 그러면 하와이어 자음 수는 6개로 줄어들게 됩니다.
, m, n, h, l, w 등 8개로서, 세계에서 음소(phoneme)의 수가 가장 적은 언어들 가운데 하나입니다.
음소란 낱말을 만드는 기본적인 소리(주로 모음과 자음)로서,
현대 한국어의 음소 수가 31개(모음 10개, 자음 21개), 현대 일본어의 음소 수가 20개(모음 5개, 자음 15개) 임을 생각하면 하와이어 음소 수의 적음을 실감하실 수 있겠습니다.
음소들이 모여 낱말을 만들므로 음소 수가 적으면 낱말의 길이가 길어지거나 동음어가 많아지는 법인데, 사실 하와이어도 한 낱말의 길이가 길거나 이 말은 한 낱말을 이루는 모음과 자음의 수가 많다는 이야기입니다.
한 낱말이 여러 가지의 의미를 갖는 일이 많습니다.

모음에는 장모음과 단모음의 구별이 있습니다만,
장모음은 같은 모음의 연속에 불과합니다.
그래서 하와이어 모음을 로마자로 적을 때,
예컨대 장모음 ā 를 aa로 적기도 하는 것입니다.

하와이어의 음절은 모두 모음 한 개이거나 ‘자음+모음’으로 구성되어 있어서,
한국어의 ‘먹다’나 영어의 Christ [krajst]처럼 낱말 속에서나 낱말 처음과 끝에 자음이 두 개 연달아 오는 일이 없습니다.
그래서 크리스마스(Christmas)를 하와이어로는 Kaliikimaka로 소리 내고 있습니다.
그러나 모음은 2개가 연속되는 일이 종종 있습니다.
  
   하와이어 낱말의 형태론적(morphological) 변화는 내부 굴절(inner inflection), 접사법(affixation), 첩용(reduplication) 등의 방법으로 이루어집니다.
내부 굴절의 예로 명사의 복수형을 만들 때 제1 음절의 모음을 장모음으로 바꾸는 것을 들 수 있겠습니다.
예를 들면 wahine(여자)의 복수형이 waahine(여자들), kanaka(사람)의 복수형이 kaanaka(사람들)로 바뀌는 것들입니다.
접사법에 동원되는 다양한 접두사(prefix)와 접미사(suffix)가 있어서 낱말을 새로 만들기도 하고, 문법적 기능을 바꾸기도 합니다.
첩용의 기능은 동작의 반복, 복수, 작고 귀여움 등을 나타냅니다.
. hoe(노 젓다), hoe-hoe(계속 노젓다) ; mana(나뭇가지), mana-mana(가지들, 작은 가지) ; aahole(물고기), aahole-hole(새끼 물고기).

  품사로는 명사와 동사가 중요한 것들이지만,
명사와 동사의 외형상의 구별이 없어서 이 둘은 아무런 형태소의 도움이 없이 그대로 전용(轉用)됩니다.
마치 영어의 work가 명사와 동사의 두 가지로 사용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하와이어의 거의 모든 명사는 그대로 동사가 될 수 있습니다.
한국어에서는 이런 현상을 찾아볼 수 없습니다.
이 밖에 대명사, 전치사, 관사, 수사, 부사들도 있고, 명사와 동사 앞뒤에 오는 많은 소사(小辭)가 있어 많은 문법적 기능을 나타냅니다.
문장 구성은 기본적으로 서술어가 문장 처음에 오는 VSO(서술어 ― 주어 ― 객어) 형이거나, VOS(서술어 ― 객어 ― 주어) 형입니다.

   하와이어는 유럽인들이 들어오기 전까지 아무런 문자를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하와이 언어의 역사는 물론, 하와이 민족의 역사도 우리는 거의 모르고 있습니다.
최초로 하와이어가 기록된 것은 유럽과 미국인들이 들어온 19세기 이후라고 믿어지는데, 1820년에 뉴잉글랜드로부터 건너온 선교사들이 하와이에 살면서 학교를 설립하고 로마자로 하와이어 표기법을 제정했으며, 1836년에는 로린 앤드루즈(Lorrin Andrews, 1795 - 1868)에 의해 최초의 하와이어 사전이 출간되었습니다.

   국제 여름 언어학 연구소(Summer Institute of Linguistics International, 줄여서 SIL International)에서 현재 사멸 위기의 언어로 분류한 이 하와이어로 번역된 성경은 1828년에 처음 그 단편 성경(portion)이 출판되었습니다.
신구약 성경 완역이 출판된 것은 1839년이었고, 글쓴이가 갖고 있는 것은 1841년에 출판된 성경전서의 영인본입니다.
아래 사진은 그 속표지인데, 하와이어로 표기된 말을 우리말로 옮기면 ‘거룩한 바이블 / 구약과 신약 / 원어로부터 번역됨, 새로 수정함 / 바이블 출판 공사 미국 지부, 1816년 원판에서. 뉴욕’이 됩니다.

다시 하와이어로 된 ‘주님의 기도(Paternoster)'를 다음에 제시합니다.

(마태오복음 6장 9절―13절).

‘주님의 기도’의 첫 구절인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가 하와이어로는 'E [호격 조사] ko [관사] makou (우리) Makua (부모) iloko (안에 있는) o (-의 [전치사]) ka [관사] lani (하늘)'로 되어 있는데, ‘아버지’에 해당하는 'Makua'가 하와이어로는 ‘부모, 양친’을 뜻함이 재미있습니다.
하느님을 왜 남성인 ‘아버지’로 표현해야 하느냐고 항의하는 여성 운동가들이 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만, 하와이어로는 아무 문제가 안 될 듯합니다.
하와이어 'makua'는 사실 아버지와 어머니를 모두 뜻하기 때문입니다.
굳이 아버지를 나타내고 싶을 때는 'makua kaane'로, 아버지가 아닌 어머니만을 말할 때에는 'makuahine'로 말합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아버지, 어머니 모두 ‘makua'라고만 말함이 이 언어의 한 특점이라고 할 수 있고, 이런 점은 많은 폴리네시아의 언어들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이 하와이어 ‘주님의 기도’ 마지막 부분은, 지금까지 소개해 드린 일본어나 오키나와어, 아이누어의 그것과 다르게 되어 있습니다.
즉, 이 기도문의 마지막 구절은 “no ka mea (왜냐하면 [관용어]), nou(당신의 것) ke [정관사] aupuni(나라), a me (그리고) ka [정관사] mana(권세), a me (그리고) ka[정관사] hoonaniia(영광), a mau (항상) loa(영원히) aku(입니다). Amene(아멘).”으로 되어 있는데, 이 구절은 앞의 다른 언어로 된 주님의 기도에는 없던 것이란 말씀입니다.
사실 한국어로 된 공동번역 성서에도 마태오복음 6장 13절 “우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악에서 구하소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영원토록 아버지의 것입니다. 아멘.)”으로 되어 있고 마지막의 묶음표 안의 부분은 ‘후대의 사본들에만 이 말이 들어 있다.’라는 각주(脚註)가 붙어 있습니다.
이 구절을 개신교 성경학자들은 송영(誦詠, doxology)이라고 부릅니다.
한국 천주교 신자들은 주님의 기도 중 묶음표 안의 부분은 전혀 모르고 있고, 개신교 신자들만 이 구절을 기도문 안에 포함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손수 가르쳐 주셔서 가장 완전한 기도문이라고 하는 주님의 기도가, 이렇게 천주교와 가톨릭에서 서로 다르게 되어 있음은 퍽 기묘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 이유는, 천주교회에서는 5세기 초에 위대한 성경학자 성 예로니무스(St. Sophronius Eusebius Hieronymus, 영어로는 St. Jerome, 347? - 420)가 번역한 라틴어 성경을 공식적으로 사용하였고,

개신교회에서는 16세기 초 에라스뮈스(Desiderius Erasmus, 1469 ― 1576)가 편집한 그리스어 성경을 완전한 신약 성경으로 받아들이고

이 에라스뮈스의 그리스어 성경을 기초로 제작하여 인쇄된 성경을 흔히 ‘공인 본문(公認本文, Textus Receptus)’이라고 부릅니다.
한때 유럽의 개신교도들에게는 이 ‘공인 본문’만이 성령(聖靈)의 감도(感導, inspiration)하심을 받은 진짜 성경이라는 신앙이 있었습니다.
그 후 이것을 저본(底本, text)으로 하여 마르틴 루터(Martin Luther, 1483 – 1546)의 독일어 성경과, 영어의 공식 성경인 제임스 왕 성경(King James Version, 줄여서 KJV, 1611년 완성)이 만들어져 후대로 전승되었는데,
이 예로니무스의 라틴어 성경에는 ‘나라와 권세와 ……’라는 구절이 없고 에라스무스의 그리스어 성경에는 이 구절이 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신약 성경의 원문에는 이 구절이 있었을까?

다시 말하면 예수께서 직접 제자들에게 이 기도문을 가르쳐 주실 때 ‘나라와 권세와 …… 아멘’이 포함되어 있었을까가 흥밋거리입니다.
그러나 신약 성경의 원문은 지금 전해 오지 않고 여러 가지 후대의 사본(寫本)들만 우리에게 알려져 있기 때문에 정확히 알 수는 없겠습니다만, 성경 본문 비평학자들의 결론만 간단히 말씀드리면, 이 구절은 적어도 마태오복음이 기록될 때는 없던 것으로 초기의 성경 사본에는 나오지 않던 것을 후대(아무리 빨라도 2세기 초 이후)에 첨가된 것이라고 합니다.
이 하와이어 성경도 개신교 선교사에 의해 번역된 것이기 때문에 개신교회의 전통을 따른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도 익숙한 하와이 민요 ‘Aloha oe’의 뜻이 ‘사랑해요, 당신’ 임은 알고 계시리라 믿습니다만, 이 민요의 가사나 선율이 사랑을 노래한 다기에는 너무 슬프다는 느낌을 받으셨을 줄 압니다.
이 노래는 실은 사랑하는 사람들의 이별을 노래한 것이고,
또 이 ‘aloha’라는 말은, 앞에서 말씀드렸듯이 하와이어의 많은 동음어(homonym)의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는데,
‘사랑(하다), 자비(롭다), 친절(하다), 인사(하다), 관심, 애인, 동정(하다), 기억(하다), 안녕, 잘 가세요, ……’ 등등 아주 다양한 의미를 갖고 있고,
사랑을 고백할 때뿐만 아니라 헤어질 때 인사말로도 쓰이는 낱말임을 말씀드려 둡니다.

하와이 나라의 마지막 여왕 릴리우오칼라니(1838-1917)가 나라가 망하자 이 노래를 부르고 바다에 몸을 던졌다는 슬픈 이야기가 이 노래와 함께 전해 오고 있습니다.

사랑 이야기와 관련해서 다음에 하와이어 성경의 요한복음 21장 15절에서 17절까지를 인용합니다.

▲ 하와이어 성경 요한 복음 21장 15절 - 17절

   이 이야기는 예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세 번 사랑을 확인하시는 내용입니다.

예수께서 “Ke [정관사] aloha(사랑을) mai nei (주다) anei [의문사] oe(너는) ia'u(나에게)? [너는 나에게 사랑을 주느냐?]”라고 세 번 물으셨고, 시몬 베드로는 세 번 모두 “Ae(예), e ka [정관사] Haku(주님), ua [관계사] ike(알다) no(정말로) oe(당신은), ua[관계사] aloha(사랑하다) au ia (내가) oe(당신을). [예, 주님께서는 내가 당신을 사랑한다는 것을 정말로 아십니다.]"라고 대답합니다.
그런데 신약 성경을 그리스어 원문으로 읽는 이들은 잘 알고 계시겠지만, 시몬 베드로가 세 번 대답한 ‘사랑한다’라는 말이 그리스어로는 모두 ‘필레오(φιλέω)’라는 동사로 되어 있고,
예수께서 물으신 ‘사랑하느냐?’라는 말은 처음 두 번은 ‘아가파오(ἀγαπάω)’ 동사로, 마지막은 ‘필레오(φιλέω)’ 동사로 되어 있습니다.

그리스어에서 서로 다른 두 동사(‘아가파오’와 ‘필레오’)를 하와이어에서는 모두 'aloha'로 번역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해 두고자 합니다.
이런 번역은 사실은 한국어를 포함하여 대부분의 다른 언어 번역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만, 하와이어처럼 동음어가 많으면서도 많은 미묘한 뉘앙스를 나타내게 할 수 있는 언어라면 다른 방법으로 이 원어의 다름을 나타낼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 봅니다.

그러나 많은 성경학자들은 이 두 동사(φιλέω[필레오]와 ἀγαπάω[아가파오])가 이 문맥에서는 서로 다른 뉘앙스가 있다고 보지는 않습니다.

하와이어로서 한국에도 들어와 알려진 낱말로 위의 aloha 말고도 hula (춤, 춤추다, 훌라춤), lei (목걸이, 머리 장식), ukulele (우쿨렐레[악기 이름], 원뜻은 ‘벼룩’), Waikiikii (호놀룰루의 지명, 원뜻은 ‘샘솟는 [kiikii] 물[wai]’), Honolulu (하와이의 주도[州都], ‘평화[lulu]의 만 [灣, hono]’이란 뜻)등을 들 수 있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