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의 번역과 수집(오빠金東昭님 著)

각국어 성경으로 보는 세계의 언어와 문자(4) - 아이누어 성경

김혜란골롬바 2024. 8. 2. 16:45

[아이누어 성경]
  아이누족들이 언제부터 일본 땅에서 살아왔는지 알 수 없지만,

일본 역사책을 보면 이미 일본 고대 시기에 ‘遐夷(하이), 夷(이), 狄(적)’ 등으로 적고 ‘에조, 에미시, 에비스’ 등으로 읽히던 민족 이름이 나옵니다.
이것이 바로 현재 우리가 아이누(Ainu)라고 부르는 민족의 일본어식 옛 이름이었습니다.
아이누족은 현재는 거의 일본화하여, 혈통적으로도 문화적으로도 언어적으로도 그들의 고유성을 찾아보기 힘들지만, 《에스놀로그》2009년판 M. Paul Lewis (ed.), (2009) : Ethnologue, Languaes of the World, International Summer Institute of Linguistics, Dallas. 에 의하면 스스로 아이누족임을 자칭하고 있는 사람들이 일본에 아직도 1만5천 명 정도 있다고 합니다.
  현재 일본의 북쪽 홋카이도[北海道]에 이들의 유적이 주로 남아 있고,

20세기 초까지 홋카이도아이누족의 자연 부락이 많이 있었지만,

이제는 이들의 자연 부락은 물론, 아이누어를 생활어로 쓰고 있는 사람도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어   [A. Vovin이라는 러시아 학자의 1996년 보고에 의하면 아이누어를 말하는 사람이 일본과 러시아의 사할린 섬에 15명이 있다고 했습니다.],
아이누어는 그 자료만 남기고 절멸(絶滅)된 언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나 홋카이도와 사할린 섬은 말할 것도 없고, 일본의 남쪽 혼슈[本州] 지방과, 알래스카에 속하는 알류샨 열도(Aleutian Islands)에도 아이누인들이 살았던 흔적이 있습니다.
이러한 사실로 보아 아이누인들은, 아마도 남쪽에서는 일본인들로부터, 북쪽에서는 러시아인들에 밀려서, 차차 홋카이도로 모이게 된 것으로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민족이 원래 남태평양에서 올라온 폴리네시아(Polynesia) 계통인지, 대륙에서 내려온 북방 계통인지 아직 학자들의 정설이 없습니다.

이 민족의 기원과 고대 역사에 관해서는 거의 알려진 것이 없다는 말인데,

그것은 이 민족이 그들의 역사를 기록할 문자를 갖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아이누족이 원래 일본 땅의 주인이었는데, 일본인들이 들어와 이들을 북쪽 홋카이도 땅으로 몰아낸 것인지도 아직 확실히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일본인들 중 아이누를 마치 자신들의 먼 조상인 듯한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가끔 있기도 하지만, 언어학적으로나 형질학적(形質學的)으로 아이누족은 일본인들과는 아주 다른 민족임에 틀림없습니다.
  일본 홋카이도 남쪽 지역인 시라오이[白老]라는 곳은 20세기 초반까지만 해도 아이누족이 굉장히 많이 모여 살던 곳이었는데, 그 많던 아이누 부락은 다 없어지고 지금은 아이누 민족 박물관이 있어 관광객을 맞이할 뿐입니다.

한국 여행사의 관광 코스에도 이 민족 박물관이 들어 있는데,

이곳을 지키는 아이누인은 세계 각지에서 온 관광객들에게 "Totek no es-okay ruwe?(안녕하십니까?)"라고 유창한 아이누어로 인사를 합니다.
이것을 보면 우리가 제주도를 찾을 때 관광 안내원 아가씨에게서 제주도 방언으로 하는 인사를 받은 일이 생각납니다.
그 아가씨가 쓰는 제주도 말이 그녀가 어렸을 때 그녀의 어머니에게서 배운 말이 아니라 관광 안내원이 된 후 필요에 의해 배운 말이듯이,

이 아이누인의 말도 직업상 다시 배운 말인 것입니다.


  이렇게 아이누족이 몰락하게 된 것은, 1457년 일본인에 대한 홋카이도 아이누인의 대규모 저항의 결과, 일본의 호족(豪族)인 가키자키[蠣崎] 가문이 홋카이도의 아이누족을 합법적으로 지배하게 되었고,

그 이후에도 1669년, 1789년 대규모의 저항에서 일본인들의 무자비한 학살로 인해 많은 아이누인들이 희생되었기 때문입니다.
일본의 아이누 정복 역사를 보면 스페인의 인디오(Indio)들에 대한 정벌이나, 미국의 하와이 침략, 러시아의 시베리아 정복과 조금도 다를 바 없는 비인간적 무력 행사였습니다.
그 이후에도 아이누족의 저항과 일본의 살육은 계속되어, 19세기 전반에 홋카이도의 아이누 인구는 약 70%로 감소되었다 하니 그 상황을 짐작할 수 있겠습니다.
  다시 1870년(메이지 3년) 일본의 메이지 정부에 의해 이 아이누 땅을 홋카이도라는 일본 행정 구역으로 확정하고부터 일본 정부의 끊임없는 동화 정책이 강제되었습니다.

아이누족은 일본식 이름을 만들어 일본 호적에 편입되어야 했으며,

일본 학교에서 교육을 받지 않으면 안 되게 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20세기 초기까지 홋카이도 도처에 있던 아이누족의 자연 부락은 세계 대전 이후 찾아볼 수 없게 되었으며,

이전에 녹음된 아이누어를 들으면 무슨 뜻인지 알아들을 수 있다는 할머니가 아직 홋카이도에 몇 사람 있다고 하지만,

생활 언어로서의 아이누어는 20세기 중반 이전에 이미 사라져 버리고 만 것입니다.


  위에서 아이누인들은 자기의 언어를 기록할 문자를 갖지 못했다고 말했습니다만,

옛 아이누어의 기록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닙니다.
이미 1625년에 일본에 왔던 이탈리아의 예수회 선교사 안젤리스 신부(Fr. Jeloramo de Angelis, S. J., 1567―1623)가 로마로 보낸 보고서에 아이누어 단어가 50여 개 기록되어 있고, 이어서 20세기에 이르기까지 러시아와 유럽의 학자, 선교사들의 기록에 상당히 많은 어휘들이 나타나며,

19세기 중반에는 독일의 언어학자 피츠마이어(August Pfizmaier)가 아이누어 문법서와 사전을 발간한 것을 필두로 여러 차례 유럽어로 된 사전들이 나왔습니다.
일본 문자로 기록된 아이누어 자료는 이미 8세기의 것부터 있었고,

18세기말에는 아이누어 ․ 러시아어 통역관이었던 우에하라 구마지로[上原熊次郞]가 세계 최초로 어휘 수 3천에 가까운 아이누어 사전을 출판하기도 했습니다.
현재에도 일본과 해외의 많은 학자들이 아이누어 연구를 열심히 진행하고 있습니다.


  아이누어 성경은 아래 사진에서 알 수 있듯이 1897년 영국 출신의 성공회 신부인 배철러(Rev. John Batchelor)에 의해 신약 성경이 출판되었습니다.
아이누어 구약 성경은 만들어진 일이 없습니다.
배철러 신부는 홋카이도에서 선교 활동을 하면서 1905년에는 아이누어 문법서와 아이누어 사전을 발간하기도 했습니다.

 

[아이누어 신약 성경 속표지]
  이 아이누어 신약 성경 속표지의 위쪽 4행이 아이누어인데 풀이해 보면

‘chikoro (우리의) Utarapa (주님) ne (이신) Yesu (예수) Kiristo (그리스도) ashiri (새로운) aeuitaknup (약속) oma (아울러) kambi (편지)’가 됩니다.
결국 이 아이누어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새로운 약속, 서간 포함’이란 뜻이 되겠습니다.
  아이누어를 흔히 집합어(輯合語, polysynthetic language)에 속한다고 하는데,

이 말은 문장 성분이 서로 뒤섞여 한 낱말처럼 보이는 언어를 가리킵니다.
한국어ㆍ일본어ㆍ몽골어 같은 언어를 교착어(膠着語), 영어ㆍ프랑스어ㆍ독일어와 같은 언어를 굴절어(屈折語), 중국어ㆍ베트남어 등을 고립어(孤立語)라고 부르는 데 대한 상대적인 용어입니다.
예를 들어 보면 "usa oruspe aeyaykotuymasiramsuypa."라는 말은 ‘여러 가지 소문에 대해 우리는 스스로 깊이 계속 생각하고 있다.’라는 뜻으로서,

이 문장을 분석하면 'usa(여러 가지) - oruspe(소문), a(우리) - e(그것에) - yay(자신) - ko(에) - tuyma(멀리) - si(자신의) - ram(마음) - suy(흔들다) - pa(있다)'처럼 됩니다.

여기서 'usa', 'oruspe', 'tuyma', 'ram', 'suy-'들만 독립할 수 있는 낱말입니다.

이렇게 동사는 각종 의미를 갖는 일종의 접사 또는 낱말들과 융합되어 복잡한 구성을 하게 되는 것인데, 이런 구성을 하는 언어에 축치(Chukchee)어, 에스키모어 같은 극북(極北)의 여러 언어나, 유럽의 바스크(Basque)어 등이 있습니다.


스페인에 “하느님이 악마를 징벌하기 위해 내리시는 가장 큰 벌은 그 악마에게 7년 동안 바스크어를 공부하게 하는 것이다.”라는 속담이 있다고 하는데,

이 속담에서 미루어 아이누어ㆍ바스크어 등과 같은 집합어의 복잡함을 짐작할 수 있겠습니다.
  위의 주님의 기도에서 볼 수 있듯이 아이누어의 음소(音素)[‘음소’란 어떤 언어의 낱말을 이루는 기본적인 소리를 말합니다.]는 모음 5개(a, e, i, o, u)와 자음 12개(k, t, p, m, n, ch, s/sh, h, x, w, y, r)뿐이고, [이 중 ch는 많은 학자들이 c로만 표기하고, s와 sh는 동일한 음소로서 sh는 i 앞에서만 나타나며, x는 학자들이 후두 폐쇄음(喉頭閉鎖音)이라고 부르는 소리인데 음성 기호로는 [ʔ]로 적습니다. ]

음절 구조도
‘① 모음 하나,
② 자음+모음,
③ 모음+자음,
④ 자음+모음+자음’의 4가지밖에 없습니다.

한국어의 경우는 ‘ㄱ-ㅋ-ㄲ, ㄷ-ㅌ-ㄸ, ㅂ-ㅍ-ㅃ, ㅈ-ㅊ-ㅉ’처럼 이른바 폐쇄 자음이 3 계열(예사소리, 거센소리, 된소리)로 되어 있고,

영어나 일본어는 'k-g, t-d, p-b, ch-j'처럼 폐쇄음이 2계열(무성음과 유성음)로 되어 있는데,

아이누어의 경우는 'k, t, p, ch'의 단일 계열임을 알 수 있습니다.

아이누어의 문장 순서는 SOV[주어―목적어―서술어], AN [수식어―피수식어] 형으로,

한국어 및 일본어, 몽고어와 마찬가지인 알타이어식입니다.


위의 주님의 기도 몇 줄로 설명해 보겠습니다.
Kando otta  an  chikoro Michi,
  하늘    에  있다  우리의  아버지
E      kon  reihei orota aeoripak kuni ne   ki         wa      un kore......
너의 가진 이름   안의  두려움   때문 에 행함이 그렇게  이루소서......
Kesto kesto   chi    e    kunip  tanto ne  yakka   un kore.
  매일  매일  우리 에게  음식   오늘   에    도      주소서.


  아이누어의 동사는 인칭 변화를 하고, [인칭 변화란 주어가 몇 인칭이냐에 따라 동사에 일정한 접미사가 붙는 것을 말합니다.
예컨대 영어의 3인칭 단수 주어 뒤에 오는 현재형 동사에 -(e)s가 붙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아이누어의 경우는 접미사뿐 아니라 접두사가 붙기도 합니다.]
또 간단한 경어법이 있으며, 퉁구스(Tungus)어처럼 1인칭 복수 대명사에 포함형과 배제형의 두 가지가 있음이 그 특색의 하나라 할 수 있습니다.

대화의 상대를 포함하는 ‘우리’와, 대화의 상대를 포함하지 않는 ‘우리’의 형태가 다르다는 말인데, 학자들은 앞의 것을 포함형, 뒤의 것을 배제형이라고 부릅니다.
한국어의 ‘저희’가 배제형과 가깝습니다.
인칭 변화의 예를 들면,
1. ray (그가 죽는다, 그들이 죽는다),
2. e-ray (네가 죽는다),
3. eci-ray (너희들이 죽는다),
4. ray-an (당신이 죽으신다, 당신들이 죽으신다),
5. ku-ray (내가 죽는다),
6. ray-as (우리들[배제형]이 죽는다),
7. ray-an (우리들[포함형]이 죽는다).

여기서 경어법(위의 4번)은 1인칭 복수 포함형(위의 7번)을 써서 나타냄을 알 수 있습니다. 독일어에서 2인칭 단수 경어형이 3인칭 복수형으로,

프랑스어에서 2인칭 단수 경어형이 2인칭 복수형으로 표현되는 것과 비슷합니다.


  ‘아이누’란 낱말은 그들 말로 ‘사람’이란 뜻을 갖고 있습니다.
일본 역사책에 나오는 이 민족의 이름 ‘에조, 에미시’도 아이누어로 ‘사람’이란 뜻이라고 합니다.

아이누어 ‘카무이’는 '하느님'이란 뜻인데, 일본어 ‘가미[神]’와 어떤 관계에 있는지 알 수 없고, 또 ‘카무이’ ‘곰’이란 뜻도 있다는 사실에서 일본말 ‘구마[熊, 곰]’, 한국말 ‘곰’과 어떤 관련이 있는 것인지 묘한 느낌이 듭니다.
  위의 주님의 기도문 속에는 나오지 않지만, 아이누 낱말 중 가장 흥미 있는 것이 수사(數詞)입니다.
아이누어 수사는 기본적으로

‘shi-ne (1), tu (2), re (3), i-ne (4), ashik-ne (5), i-wan (6), arawan (7), tu-pe-san (😎, shine-pe-san (9), wan (10), hot-ne (20)’의 열한 개밖에 없고,

나머지 수사는 이들을 조합해서 만들어 냅니다.
11부터는 ‘ikashima’(넘다)라는 말을 덧붙여
‘11. shine ikashima wan,
12. tu ikashima wan, ……, 19. shinepesan ikashima wan,
21. shine ikashima hotne,
27. arawan ikashima hotne’라는 식으로 만들고,

20을 넘는 10 단위 수사는 20진법과 감수법(減數法)을 써서
‘30. wan e tu hotne (10 뺀 2×20),
40. tu hotne,
50. wan e re hotne (10 뺀 3×20),
90. wan e ashikne hotne (10 뺀 5×20),
100. ashikne hotne (5×20)’로 나타냅니다.
이런 방법으로 수사를 만들다 보니 예컨대 938과 같은 수는 ‘ashikne hot ikashima ine shine wan hotne, tupesan ikashima wan e tu hotne (5 ×20+4 ×1 ×10 ×20에, 8 더하고, 10 뺀 2 ×10)’으로 표현하여 그 어형이 굉장히 길어지게 됩니다.
이렇게 수사의 어형이 길다는 것은 그런 큰 수를 거의 사용하지 않았다는 뜻이 됩니다.


  그렇다면 신약 성경의 묵시록 7장 4절에 나오는 ‘14만 4천’과 같은 수사는 아이누어로 도대체 어떻게 말할까 궁금해집니다.
[요한 묵시록 7장 4절의 원문은 “그리고 내가 들은 바로는 도장을 받은 자들의 수효가 십사만 사천 명이었습니다.”입니다.]
위의 아이누어 성경의 요한  묵시록을 찾아보니 ‘십사만 사천 명’ 'shi sen nin ne ainu ikashima ju-shi man nin ne ainu (사천 명의 사람에, 14만 명의 사람)'으로 적고 있었습니다.
결국 1,000 이상의 수는 일본어를 차용해 쓴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1,000은 고유한 아이누어로 ashikne shine wan hotne (5 ×1 ×10 ×20)라고 합니다.


  일본을 통해 한국에 들어온 아이누어 낱말이 하나 있습니다.
20여 년 전 상당히 유명했던 여성 옷 브랜드 이름 ‘논노 패션’‘논노’라는 말이 아이누어로 ‘꽃’이란 뜻입니다.
마태오복음 6장 28절“들꽃이 어떻게 자라는가 살펴보아라.” [이 구절의 가톨릭 <성경> 번역은 “들에 핀 나리꽃들이 어떻게 자라는지 지켜보아라.”로 되어 있습니다.]는 아이누어 성경에는 “nupuri kata an nonno nekon ne wa hetuku ya, sekoro esanniyo yan. [이를 분석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Nupuri kata an nonno nekon ne wa  hetuku  ya,  sekoro esanniyo
      산      위   있는  꽃    어떻게  그리 자라다 [의문] 누가  생각하다    yan.
[명령])”로 번역되어 있는데 이를 직역하면 “산 위에 있는 꽃이 어떻게 자라는가, 누가 생각해 보아라.”가 됩니다.
‘들꽃’에 해당하는 그리스 원어는 τὰ κρίνα τοὗ ἀγροὖ ([타 크리나 투 아그루], 들의 백합화)인데 이 ‘들의 꽃’이 아이누어에서는 ‘nupuri kata an nonno (산 위에 있는 꽃)’으로 번역된 것이 흥미롭습니다.

아이누인들의 서식지 근처에 산이 많았기 때문인지 모르겠습니다.
또 이 ‘nonno’ ‘기쁨의 부르짖음 (exclamation of pleasure)’이란 뜻을 갖고 있음도 우리의 흥미를 일으킵니다.


   많은 학자들이 아이누어의 어원적 계통을 찾고자 노력해 왔습니다.
이 아이누어가 일본어, 한국어, 알타이어, 심지어 인도 유럽어와의 비교가 시도되었지만, 어느 쪽도 믿을 만한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아이누어 계통에 관한 현재까지의 결론은 계통을 모르는 “고립어(isolated language)”라는 것입니다.

전 세계의 고립어에는 이 아이누어 외에도 스페인 북부에서 쓰이는 바스크어, 파키스탄의 부루샤스키어(Burushaski), 베트남의 무옹어(Muong) 등이 있고,

많은 학자들은 한국어와 일본어도 계통을 알 수 없는 고립어로 보고 있습니다.  
한국어를 알타이 어족, 또는 우랄 알타이 어족에 속한다고 말하는 것은 구시대 학자들의 가설일 뿐입니다.
현대의 언어학자들은 이런 말을 하지 않습니다.


  일본은 물론, 유럽에도 아이누어 학자들이 많이 있는데,

지역적으로 가깝고 또 우리말과의 친연성도 이야기되고 있는 형편임에도,

우리나라에 이 언어를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학자가 없음은 안타까운 일입니다.

아이누어에 관심을 갖는 젊은 학자들이 나왔으면 하는 바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