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의 번역과 수집(오빠金東昭님 著)

각국어 성경으로 보는 세계의 언어와 문자(3) - 오키나와語 성경

김혜란골롬바 2024. 8. 2. 12:53

[오키나와어 성경]

한반도의 가장 북쪽인 함경북도의 온성(穩城)에서 제주도 남쪽의 마라도(

魔羅道)까지 대략 950㎞ 정도 된다고 하지요?
이에 비해 일본 열도(列島)의 길이는 최북단 왓카나이[稚內]에서부터 최남단 야에야마 열도[八重山列島]까지 3,000㎞가 되어, 한반도 길이의 3배가 넘는 셈입니다.
일본이 이렇게 남북으로 길기 때문에 일본 북쪽과 남쪽에는 보통 우리가 알고 있는 일본의 것과 다른 민족과 언어와 문화가 있을 수 있겠습니다.

앞에서 말씀드린 대로 일본 최남단에는 관광지로 널리 알려진 오키나와 제도(諸島)가 있는데, 정확히 말씀드리면 일본 남쪽의 이 섬들은 일본에서는 난세이[南西] 제도라 부르고, 다시 이 여러 섬들을 사츠마[薩南] 제도, 류큐[琉球] 제도, 다이토[大東] 제도로 나누며,

이 중 류큐 제도 안에 오키나와 제도를 소속시키고 있습니다.  

오키나와 제도는 행정 구역상 오키나와 현(縣)에 속하고 이곳 인구는 대략 143만 명쯤이라고 합니다(2019년 조사).
이 143만 명의 사람들이 모두 오키나와 인들이고, 모두 오키나와 말을 쓴다고 할 수는 없지만, 과거부터 이곳 주민들은 일본인들과 다른 독특한 언어를 사용하고 있었고, 이 언어를 오키나와어, 또는 류큐어라고 부릅니다.
현재 일본 교과서에서는 이 언어를 류큐 방언이라고 합니다만, 사실 이들의 말은 일본인들이 거의 이해하지 못하는 말로써, 한국의 서울말과 제주도 말보다 훨씬 거리가 멀고, 프랑스 말과 스페인 말보다 먼 언어라고 이야기합니다.

앞에서도 말씀드렸지만, ㄱ과 ㄴ 두 사람이 이야기를 하는데, ㄱ의 말을 ㄴ이 조금도 어렵지 않게 이해한다면 이 두 사람은 동일 언어의 동일 방언을 쓰고 있다고 말하고,
두 사람이 말하다가 한 사람이 알아듣지 못해서 다른 사람이 다른 어휘와 표현 방법을 여러 가지로 써서 마침내 이해가 되었다면,
이 두 사람은 동일 언어의 다른 방언을 쓴다고 말하며, 아무리 해도 의사소통이 안 되면 그 두 사람은 다른 언어를 쓴다고 표현합니다. 그렇다면 일본어와 오키나와어는 다른 언어라고 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이 두 언어의 문법 구조라든가 소리 및 어휘들이 서로 비슷한 점이 많으므로 이 두 언어는 한 언어에서 갈라진 것이 분명한데,
이럴 때 언어학자들은 이 두 언어를 서로 자매어(sister language)라고 부른다는 이야기는 앞에서 했습니다.  

오키나와어는 일본 문자를 써 왔습니다.
지금 남아 있는 가장 오래된 오키나와어 기록은 16세기에 일본 문자와 한자로 기록된 약간의 비문(碑文)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특별히 소개드리고 싶은 것은 놀랍게도 16세기 초에 우리 한글로 기록된 오키나와어 자료가 있다는 사실입니다.

세종 시대에 훈민정음 연구에 큰 공이 있었던 신숙주(申叔舟, 1417∼1475) 1443년(세종 25년) 세종의 명을 받아 서장관(書狀官)으로 일본에 다녀온 후 일본의 정치ㆍ외교ㆍ사회ㆍ풍속ㆍ지리 등을 종합적으로 정리하여 1471년(성종 2년)에 간행한 ≪해동제국기(海東諸國紀)≫란 책을 편찬했는데,
그 후 1501년(연산군 7년) 성희안(成希顏)이란 학자가 유구국(琉球國)에서 온 사신에게 유구(琉球=오키나와)의 풍토와 인물 등에 대해 상세히 질문하여 답변한 내용을 이 책 ≪해동제국기≫ 끝에 ‘유구국(琉球國)’이란 제목으로 덧붙여 함께 출판했습니다.
이 덧붙인 기록 안에 ‘어음번역(語音翻譯)’이라 하여 유구어(=오키나와어) 어휘와 문장 150여 개가 한글로 기록되어 있는데,
이 자료는 가장 오래된 오키나와어 자료라 할 수 있습니다.

[신숙주(申叔舟)가 편찬한 ≪해동제국기≫ 표지]
  이 ≪해동제국기≫ 속의 ‘어음 번역’의 몇몇 항목을 인용해 보면
“우라 나와 이갸이우가 (너의 이름은 무엇이냐?), 우라 읻ᄌᆞ 고마가 (너는 언제 왔느냐?),
.파루(봄), 낟ᄌᆞ(여름), 아기(가을), 푸유(겨울), 사긔(술), 카미(종이), 크지(입), 파무(뱀), ……” 등을 들 수 있습니다.

[≪해동제국기≫ 말미의 ‘어음번역’ 부분]
이 기록 속에는 오키나와인들의 풍속 이야기도 상당히 나오는데, 진기한 부분을 인용하면 “임금의 장례에는 금은을 사용해서 관을 장식하고, 돌을 파서 곽을 만든다. 매장하지 않고 산에 집을 만들어 안치하고서 10여 일 후에 친족과 비빈들이 모여 곡을 하고 관을 열어 시신을 꺼내 살과 피부를 모두 발라내어 물에 던지고 뼈는 도로 관에 넣는다. ……

나라의 동남쪽에 물길로 7,8일을 가면 소유구국(小琉球國)이 있다.
임금이 없고 사람들은 모두 장대(長大)하며 옷 입는 제도가 없다.
사람이 죽으면 친족들이 모여 그 고기를 나누어 먹으며,
그 두개골에 금을 입혀 식기(食器)로 쓴다. ……”는 괴이한 말이 있습니다.

이제 오키나와어로 된 성경을 살펴보겠습니다.

우선 이 성경의 표지와 루가 복음서의 11장 첫머리의 사진을 다음에 제시합니다.

이 성경은 오키나와에서 전교를 하던 헝가리 출신의 유대계 선교사 베텔하임(Bernard J. Bettelheim, 1811―1870)이 1855년 이곳 언어로 출판한 것인데, 이 사진은 일본 센슈[專修] 대학 도서관에 있는 것을 복사한 것입니다.
오른쪽 첫째 줄의 ‘乙夘年 鐫(을묘년 전)’은 ‘1855년인 을묘년에 이 책을 인쇄했다’는 뜻입니다.

가운데의 ‘路加傳福音書’ ‘루가가 전한 복음서’라는 뜻이고,

마지막 줄의 ‘往 普天下 傳 福音 與萬民’ ‘모든 세계로 가서 만민에게 복음을 전하라’는 뜻입니다.

베텔하임 오키나와어 성경은 현재 ’루가 복음서, 요한 복음서, 사도행전, 로마서‘만 남아 있어서 마태오 복음서에 나오는 긴 ‘주님의 기도’는 없으므로, 루가복음 11장에 나오는 짧은 ‘주님의 기도’가 나오는 부분을 다음에 제시합니다.

가타카나로 쓰인 이 부분(오른쪽 42페이지의 마지막 줄 끝 부분에서 왼쪽 43페이지의 넷째 줄 첫째 글자까지)을 알기 쉽게 한글로 그 음을 적어 보겠습니다.
“텐니 오루모노, 우나시이토나헤, 텐고쿠 이타헤, 시이노오헤세란 우치니 나요루고토 마타지 우치니 나헤타인데 네가테오야비시. 3히비니치유후노한마이 왓타아니 우타비미 시야우레. 4와가 쓰미 유루키쿠이레, 와넨와니 카게토우스야유루시요루 유에, 완마도후 와사레루유토 나카에히키미 시야우나, 타다 와사스카라노가아키쿠 이미시야우히타인데 네가테오야비비사.”
  
우선 여기 사용된 가타카나 문자 중에 현대 일본에서 쓰지 않는 것이 몇 개 있는데
11장 1절부터 찾아보면 ‘ヱ, +, 子, 刀, 三’ 등이 그것이고, 이들은 각각 현대 글자로는 ‘エ(에), ナ(나), ネ(네), ア(아), ミ(미)’가 됩니다.
 오키나와어는 현대 일본인들도 거의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라 제가 위의 문장을 전혀 알 수는 없습니다만,
약간이라도 이해되는 부분만 적어 보면
“텐니 오루모노(하늘에 계신 분), 텐고쿠 이타헤(천국이 오소서), …… 와가 쓰미 유루키쿠이레(우리 죄 용서하소서) ……” 정도입니다.  

여기서 이 오키나와어 성경의 역성자(譯成者)인 베텔하임에 관해 약간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는 1811년 당시 헝가리의 수도였던 브라티슬라바 (Bratislava, 현재 슬로바키아의 수도)에서 유대인의 아들로 태어났는데,
9세 때 이미 독일어, 프랑스어, 히브리어로 시를 쓸 수 있을 정도로 외국어에 천재적인 재질을 갖고 있었다고 합니다.
유대교의 랍비가 되기 위한 교육을 받다가 랍비 학교를 뛰쳐나와 국내 여러 대학에서 공부를 했고, 최후로 이탈리아 파도바 대학에서 의학을 배워 의사가 된 후 이집트와 터키로 건너가 활동을 했습니다.
1840년(29세 때) 영국으로 건너가 영국 성공회 신부님에게서 세례를 받아 기독교도가 되었고,
이어서 영국 여자와 결혼해서 영국 국적을 취득하였습니다.
1846년 홍콩을 거쳐 오키나와로 왔고, 오키나와의 중심지 나하[那覇]의 호국사(護國寺)라는 절을 근거지로 8년간 오키나와에 머물렀습니다.
1848년 12월 8일에 태어난 그의 두 번째 딸은 기록상 오키나와에서 태어난 최초의 유럽인이라고 합니다.

베텔하임 오키나와에 도착할 당시인 19세기는 유구 왕국(琉球王國)에서 기독교가 엄중히 금지되어 있었으나,
당시 영국과 프랑스의 군사적 압력으로 기독교 포교가 어느 정도 묵인되었다고 합니다.

베텔하임은 이곳에서 의료 활동을 하여 주민들의 존경을 받았고,
또 이 지역에 종두(種痘)를 보급하였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성경을 이곳 오키나와어로 번역하여 출판하였는데,
신구약을 전부 번역한 것 같지는 않고, 아마도 신약만 번역한 듯합니다.
그러나 지금 확인된 오키나와어 성경은 앞서 말한 대로 루가복음, 요한복음, 사도행전, 로마서 등 4가지밖에 없습니다.

베텔하임은 1854년 미국 함장(艦長)인 매튜 페리(Matthew Perry) 오키나와에 왔을 때

그의 배를 타고 미국으로 건너가 남북전쟁 중에 북군(北軍)의 군의관으로 활약하다가 1870년 미국 미주리(Missouri) 주 브룩필드(Brookfield) 시에서 폐렴으로 사망했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