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는 ‘내일’보다 먼 모레·글피가 있다
“우리는 ‘내일(來日)’이라는 순우리말이 없을 정도로 미래를 모르는 민족이다.”라는 말을 종종 접한다.
참 웃기는 소리다.
순우리말에는 ‘내일’보다 더 먼 미래인 ‘모레’는 물론이고,
그보다 더 먼 미래를 뜻하는 ‘글피’와 ‘그글피’도 있다.
다만 이상하게 ‘내일’을 뜻하는 순우리말이 없다.
그러나 원래부터 없던 것은 아니다.
중국 송나라 때의 책 <계림유사>에는 당시 고려 사람들이 쓰던 단어가 수백 개 실려 있다.
그중에는 고려 사람들이 ‘명일(明日: 오늘의 바로 다음 날)’을 ‘할재(轄載)’로 말한다는 대목이 나온다.
그런데 ‘할재’는 고려 사람들이 내일의 의미로 쓰던 ‘어떤 말’을 중국 발음에 가까운 한자로 적은 것이다.
현재 중국에서 코카콜라를 ‘가구가락(可口可樂)’으로 적고 ‘커코우커러’로 읽는데,
송나라 때는 ‘轄載’를 어떻게 발음했는지 알 길이 없다.
학자들 의견도 제각각이다. 누구는 ‘하제’라고 하고, 누구는 ‘후제’라고 말한다.
‘올제’가 맞는다고 주장하는 이도 있고, 조선시대의 한 문헌에는 ‘흘제’도 보인다.
어느 외국인은 ‘후체’로 기록해 놓기도 했다.
이들을 종합하면 연관성이 깊은 ‘하제’ ‘후제’ ‘흘제’ ‘후체’ 중 하나, 아니면 이들 말과 발음이 비슷한 어떤 말이 ‘내일’에 대응하는 순우리말일 가능성이 크다.
어느 학자는 ‘내일(=낼)’ 자체가 순우리말이라고 주장한다.
세종 이전까지 우리에게는 우리의 글자가 없었다.
그러다 보니 우리의 발음과 비슷한 것을 한자로 적을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당시 ‘낼’로 소리 내던 우리말을 ‘올 래(來)’와 ‘날 일(日)’을 빌려다 적으면 소리도 비슷하고 글자의 의미도 똑같아 그렇게 쓰게 됐다는 것이다.
이 또한 나름 설득력이 있다.
아무튼 우리에게는 분명 ‘來日’을 뜻하는 순우리말이 있었다.
하지만 그 말이 한자말에 밀려 사라졌다.
아쉬운 일이다.
그런 아쉬움을 달래며 우리말 하나를 배운다면,
“모레의 다음 날”을 뜻하는 말은 ‘글페’가 아니고 ‘글피’이며,
“바로 며칠 전”을 뜻하는 말은 ‘엇그제’가 아니라 ‘엊그제’가 바른 표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