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2017년 3월 일기 - 안사돈 이야기

김혜란골롬바 2017. 3. 22. 09:19

친구의 아픈 소식에 같이 아파하고 마음 졸이다가, 수술 잘 되었고,

항암 치료 안 해도 된다기에 안도의 숨을 내쉬고 지내던 어느날 아침에

작은딸에게서 걸려 온 전화!
매일 아침 걸려 오던 안부 전화려니 하고 받았더니....
"우리 어머님(77세) 엊저녁에 쓰려지셔서 중환자실에 계신다 해서

애들 데리고 가고 있어!"
또 이 무슨 일!
바깥사돈(79세)도 2,3년전 쓰러지셔서 다행히 빨리 손 썼기에

큰 불편없이 지내시고 있는 중인데...
편찮으신 분 걱정보다 우리 딸 걱정이 먼저...
골든타임을 놓쳤는지 병원에서 손 쓸 일이 없다네!

휠체어도 못 타시고...ㅉㅉ
우리 사위는 춘천과 의정부를 오가면서 충격받으신 아버지 돌보랴,

시간 맞춰 중환자실로 어머니 면회 들어가랴 딱해 못 보겠네!
사시던 아파트도, 모든 경제권(통장)도 안사돈에게 있기에, 남의 것이나 마찬가지이고...
곧 춘천 근처 요양병원으로 옮겨야 되고, 바깥 사돈도 모셔와야 되고...
춘주(고교 동기 친구) 친정 부모님처럼 두 분이 같이 요양병원에 입원 하시는 안을

 넌지시 비쳤더니 "택도 없는 소리!"라네!

우리 딸과 사위는 대학원 석사, 박사 과정 중에 만났다.
사흘이 멀다하고(?) 맞선 보러 엄마에게 불려 나가더란다.
상견례 때 안사돈 왈 "가까운데 인연이 있는걸 모르고, 먼데서 찾았네요.ㅎㅎ"
안사돈과 얼굴 마주 한거는 아마 열 번도 안 되리라.
상견례, 결혼식, 사위 박사 학위 수여식, 손주 낳았을 때, 돐잔치, 남편 장례 때 등등...
결혼식 때 점촉하러 나가는데 떨고 있는 내 손을 꼬옥 잡아 주시던 분!
딸 혼자서 시댁 식구 집들이 준비한다기에 나는 대구서 걱정했더니,

그 날 저녁에 전화와서는 딸이 엉엉 우네!
깜짝 놀라서 영문을 물었더니...
결혼 전에 아파트를 장만하여 아들을 미리 독립시켰기에

간단한 살림들이 준비되어 있었단다.
그것들을 우리 딸이 다 버렸고,
집들이 오셨다가 그 그릇들을 찾으시고는 호되게 야단 치신 듯?
나도 시어머니 살림인데 여쭤보고 버리는게 당연하다고 같이 야단쳤었다.
안사돈께서 "정마르첼리나"라는 세례명으로 입교하셨다기에 너무나 기뻤고,
두째 손녀 낳았을 때는  "잘 생기신 바깥 사돈(울 남편) 닮은 아들 낳기만 기다렸다."

마냥 서운해 하셨고,
우리 남편 세상 떠났을 때는 두딸까지 앞세워서 문상 오셨고,

나중에 며느리에게 "나 우리 친정엄마 돌아 가셨을 때 보다 더 많이 울었단다."

하시더란다.
그해 추석엔 나 힘들어 한다고 본가는 오지 말고 친정 가라고 배려해 주신 분!
애들 미국 가서 살게 되자 일부러 나한테 전화하셔서

"우리들은 얼마 전에 미국 관광 다녀 왔으니 눈치 보시지 말고 마음껏 미국 다녀오라"

고 하시던 분!

"주님! 정마르첼리나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소서. 아멘."

서울 길음성당에서 혼인성사를 마치고

 

 

나도 정신이 번쩍 들었다.

우울증(?)이랍시고 겨울내내 쳐져 있을 일이 아니었다.

이 상황에 나까지 아프면 우리 두 딸과 사위가 얼마나 힘들 것인가!

그래서 힘내어서 반찬(장졸임과 콩자반)도 만들고....

먹다 남은 신 김치와 메밀가루로 김치전도 굽고....

이사가느라고 정리의 달인(?)이 된 친구 따라 옷장 정리도 하고...

그런데 겨우 티셔츠 몇 장만 의류 재활용함으로 보내고는 다시 집어 넣었으니...ㅉㅉ

10년동안 두서너번 밖에 안 입었던 코트를 과감히 잘랐다.

2007년 겨울 해성이 자수 전시회 때는 이랬는데, 자르고 나니....ㅎㅎ

 

어르신 대학 개강(3/10)도 가까웠기에,

틈틈히 한달에 한번 하는 합동 축일잔치에 선물로 나갈 사탕 목걸이도 열심히 만들고.....

 

다행히 안사돈은 위기를 넘기시고, 한달 여동안의 중환자실에서 벗어나

어제(3/21) 춘천 재활 병원으로 옮기셨다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