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스크랩] ME(1989.7.28~30)에서 나눈 편지

김혜란골롬바 2014. 7. 15. 08:04

우리 부부는 89년 7월 28일 부터 2박 3일 동안

60차 M.E(Marriage Encounter : 부부 주말 강습)를 다녀왔었답니다.

 이 모임은 꼭 부부간이 아니래도  (신부님끼리, 수녀님끼리 ,친구끼리

종교 불문하고 대화의 대상끼리) 

 어떤 주제를 놓고 서로 편지를 써서 교환하여 봄으로써

대화를 나누고 개선하는 대략 그런 모임이라면....?

  25년 가까이 지난 어제 우연히 그 때 나눈 편지들이 적혀 있는

노트를 찾아내어 읽어 보니

그때에는 무심코 읽어 버린 구절들이 그 사람이 떠난지

6년이 지나버린 지금은 와 닿는 게 많은 것 같고,

그 때의 이 편지가 미리 써 놓은 남편의 유언장 같기도 하네요 

 

ME 받을 때 그 당시 머물렀던 방문(대구 남구 봉덕동 여성 교육관 304호)에

붙어 있던 엠블렛

 

 

        

"왜 나는 이 주말에 왔는가?

        이 곳에 와서 나는 무엇을 얻고자 하는가?

 나는 전부터 M.E에 참석하고 싶었으나 문제 있는(갈등있는) 부부만

참석하지 않을까? 하는 편견에,

 또 참석하므로서 우리가 문제있는 부부라고 다른 사람에게 드러내는

같애서 꺼려 왔으며,

우리는 어느 누구보다 잉꼬 부부라는 자만심에서 올 필요조차 없다고

생각했었다오.

 막상 구청 동료의 권유를 받고 신청했다는 당신의 말을 듣고

"긁어 부스럼"이라고 안 들어야 되는 얘기를 듣게 되는게 아닌가 하고

두려움에 잠겨 긴장되기도 했으며,

 M.E를 다녀 온 후 변화된 모습을 기대하는 주위의 시선도 겁났고,

 심지어 며칠 전부터는 자꾸 쑥스러워지고 그 분위기에 익숙해 질 것

같지 않은 걱정이 지나치다 보니

여기 오기까지 며칠동안 짜증스런 나날이기도 했었다오.

 그러나 이제 이 주말에 참가하게 되었기에 여기서 받아들여지는 것에 대해

 어떤 기대도 갖지 않고, 나에게 내려지는대로 받고자 한다오.

 이 곳에 와서 무엇을 얻고자하는 기대보다는 유별스럽게 당신의 퇴근을

기다리는 고통(?)스런 마음을

 이 2박 3일 동안은 안 갖어도 된다는 그 사실만이 즐겁고

이 사흘이 나에게는 이처럼 크고 완전한 휴가는 없다고 생각한다오.

 

                                                                            89. 7. 28  란"

 

 

 

           "계속 살아가고 싶은 이유는 무엇인가?

 M.E 주말 강습이 계속되면서  점점 어려운 질문들이 주어지는구나.

 계속 살아 가고 싶은 이유에 대한 물음은 전혀 예기치도

 얘기할 수도 없는 것 같은 내용인데...

 지금까지 그저 막연하게 산다는 것 자체에 큰 의미를 갖지 못 했었고, 

 내가 죽는 시기와 방법, 죽은 후 가족에 대한 염려 등을 공상하듯이

여러 번 생각해 왔었단다.

 당신에게 정말 무책임하고 죄스러운 얘기가 되나보다.

 그렇지만 산다는 것 자체에 애착을 느낄 수 없는 건 어쩔 수 없구나.

 하긴 막상 나에게 죽음이 다다르면 생각이 바뀔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지만...

 정말 내가 생각해도 웃기는 일이지만 언제부터인가 나는 오래 살지

못 할 것이라는 생각을 해 왔었고,

그런 생각을 하면서 그 시기는 애들이 시집가고 난 후에라야 좋겠다고

생각했단다.

 그래서 "애들이 시집가는 연령이면 내가 몇 살이나 될까?"  라는 공상에다

좀 더 욕심을 내어

그래도 고생하면서 살아 온 당신에 대한 죄스러움 때문이랄까?

애들 시집 보내고 당신이랑 이 곳 저 곳 여행이나 다니며 남은 여생을 보내다 죽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었단다.

 이러한 공상이 꼬리를 물게 되면 결국 살만큼 다 살게 되어 버린 꼴이 되어

실소를 금치 못 하지만...

 "내가 나쁜 병에 걸려 죽지도 않고 주위 사람들을 고생 시킬 경우

자살하는 방법은....?"

 "내가 죽고 나면 당신은 어떻게 살아 갈까?"

 "믿음이 강하니 신앙의 힘으로 견디어 내겠지."

 "생활비는 내 퇴직 연금으로 혼자 사는건 가능하겠지?"

 "어쨌든 애들 시집 보내고 난 후라야 짐은 덜어질텐데..."

 그러면서도 죽음에 대한 공포는 따르지 않았으니 분명 나 혼자 만의 삶에

대한 애착은 없었던 것 같단다.

 하지민 공상의 세계와는 달리 난 당신이 알고 있다시피 밝고 명랑하게

살아 온 것 또한 속일 수 없는 사실이란다.

 어두운 맘, 어두운 생활을 싫어 하면서 가능하면 가정도 화목하게

사회 생활도 명랑하게 하려고 노력해 왔단다.

.........(중략).......

 

 여기 와서 이렇게 편지를 쓰면서 생각해 보니 평상시 남들과 비교하면서

생각했던 것과 같이

역시 우린 잘 살아 온 사이였던 것 같고, 

 또 지금도 앞으로도 변함 없을 것 같단다.

 

 (두서가 없어,  편지 써 본 지도 너무 오래 되었고,

또 제목이 주어진 편지이니...

 하지만 지금 제목에 구애 받기보다는

그냥 막연하게 이것 저것 생각 나는대로 쓰고 있으니 이해 바란다)

 

                                                                                                                                                                     89.7. 29.    당신의 남편"

 

 

 

 

 

  (추서) 이 편지에서처럼 6년전(2008. 7. 20)

 이 사람은 주위 사람(특히 나)에게 고생 안 끼칠려고

오후 5시 주일미사 다녀온 후 저녁 잘 먹고 TV 보다가

밤 9시에 15분동안 가슴 아프다고 하더니 쓰러졌답니다

("급성심근경색"으로 인한 심장마비라더군요)

 

 

 

출처 : 평리천주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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